
투자를 받는 일과 회사를 파는 일은 다른 게임입니다
투자자는 앞으로 생길 것에 값을 매기고, 인수자는 지금 있는 것에 값을 매깁니다. IR 자료를 그대로 들고 가면 생기는 일.
2019년 봄, 저는 중기부 모태펀드 자금을 유치하려고 투자심사역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2025년 가을에는 코스닥 상장사로부터 매각 제안을 받고 실사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도 완전히 다른 태도로 서류를 준비했습니다. 6년이라는 시간 차이도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두 자리가 요구하는 것 자체가 달랐다는 데 있었습니다.
둘 다 회사를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하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설득하는 자리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뭘 해왔는지 증명하는 자리였습니다.
투자유치는 믿게 만드는 일입니다
투자유치 미팅에 들어갈 때 준비하는 자료는 대부분 미래 시점의 숫자입니다. 3년 뒤 매출 추정치, 시장 규모, 경쟁사 대비 우위 요소 같은 것들입니다.
심사역이 궁금해하는 것도 지금 매출이 얼마인지가 아닙니다. 이 팀이 그리는 그림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입니다.
2019년, 저는 심사역과의 미팅을 앞두고 사업계획서의 재무 추정 페이지를 몇 번이나 다시 만졌습니다. 매출 곡선을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그럴듯하게 그리려고 밤을 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팅에서 심사역이 오래 붙잡고 물어본 건 그 곡선이 아니었습니다. 「이 팀이 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였습니다. 숫자는 참고 자료였을 뿐입니다. 결정을 가른 건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였습니다.
엑시트는 증명하는 일입니다
반대로 2025년 매각 제안을 받았을 때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서류가 필요했습니다.
상대는 미래 스토리에는 관심이 적었습니다. 그보다는 지난 3~5년간의 재무제표, 세금계산서 발행 내역, 계약서 원본을 요청했습니다. 인건비 대장과 4대보험 납부 이력까지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뭘 팔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매출이 실제로 회사 계좌에 들어왔는지, 계약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이 국면에서 가장 큰 차이는 협상의 방향성입니다. 투자유치에서는 제가 먼저 그림을 그려 보여주는 쪽이었습니다. 엑시트 국면에서는 상대가 먼저 질문을 던지고 제가 하나씩 소명하는 쪽이었습니다.
실사는 6개월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한번은 실사 자료를 정리하다가 3년 전 특정 분기 매출이 눈에 띄게 낮았던 구간을 발견했습니다. 투자유치 때였다면 「그해에 제품을 다시 만들었다」는 한 문장으로 넘어갔을 부분입니다. 그런데 매각 실사에서는 그 분기의 거래명세서와 세금계산서를 요청받았습니다. 해당 거래처와의 계약 해지 사유서까지 달라고 했습니다. 소명 자료를 만드는 데만 며칠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정당한 사유였다는 게 서류로 뒷받침되면서 넘어갔습니다. 만약 그 서류를 제때 찾지 못했다면 밸류에이션 협상에서 근거를 잃을 뻔했습니다.
텀시트와 SPA는 무게가 다릅니다
투자유치의 텀시트와 매각 협상의 SPA는 이름만 들으면 둘 다 계약서 한 종류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손에 쥐어보면 무게가 완전히 다릅니다.
| 구분 | 텀시트 | SPA(주식매매계약서) |
|---|---|---|
| 분량 | A4 서너 장 안팎 | 부속서류 포함 백 페이지 이상 |
| 법적 구속력 | 대부분 없음 (비밀유지·배타협상 조항 제외) | 서명과 동시에 구속력 발생 |
| 핵심 조항 | 밸류에이션, 우선주 조건, 이사회 구성 | 진술 및 보장, 손해배상 한도, 선행조건 |
| 협상 분위기 | 조율형, 좋은 결과를 향해 함께 조정 | 책임형, 위반 시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음 |
| 어긋났을 때 | 조건을 다시 협의 | 손해배상·대금 조정·계약 해제 청구 |
처음 SPA 초안을 받아 들었을 때 저는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결국 진술 및 보장, 손해배상 한도, 선행조건, 이 세 갈래를 먼저 찾아 읽었습니다. 나머지는 그 뒤에 붙는 세부 조항으로 봤습니다.
텀시트에 서명할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SPA 초안을 받아들면 안 됩니다. 그러면 진술과 보장 조항 하나하나가 나중에 얼마나 큰 책임으로 돌아올지 가늠하지 못한 채 도장을 찍습니다.
실사 강도가 갈리는 지점
투자유치 실사와 매각 실사가 갈리는 지점은 결국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투자자는 자기 돈이 이 회사의 성장에 쓰이는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매수자는 자기 돈으로 회사 전체를 사들입니다. 과거의 부채와 잠재 위험까지 통째로 떠안습니다. 그래서 확인해야 할 범위가 훨씬 넓어집니다.
| 확인 항목 | 투자유치 실사 | 매각 실사 |
|---|---|---|
| 재무 자료 범위 | 최근 1~2년 | 최근 3~5년 |
| 계약서 | 주요 계약 요약본 | 원본 전량 + 승계 가능 여부 |
| 인사·노무 | 조직도 수준 | 4대보험, 근로계약, 노동청 진정 이력 |
| 세무 | 법인세 신고서 | 세무조사 이력, 3개년 세무조정계산서 |
| 소요 기간 | 한두 달 | 보통 3~6개월 |
심사역 입장에서는 회사가 망하더라도 자신이 투자한 지분만큼만 손실을 봅니다. 매수자 입장에서는 회사를 통째로 떠안습니다. 확인할 이유가 명확합니다.
회수 시장의 축은 이미 매각 쪽에 있습니다
개별 회사의 사정만 보지 말고 시장 전체의 회수 흐름도 같이 보겠습니다.
| 회수 유형 | 2022년 | 2025년 | 2026년 상반기 |
|---|---|---|---|
| IPO | 24.3% | 37.3% | 37.9% |
| 매각(M&A·구주매각) | 56.5% | — | 47.7% |
언론 헤드라인은 「IPO로 몰린다」고 씁니다. 그런데 숫자로 보면 매각은 여전히 최대 회수 경로입니다.
여기에 흐름이 하나 더 겹칩니다. 2026년 7월 6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 원칙금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가 시행될 예정입니다. 장기 락업, 즉 주식 처분 제한이 붙습니다. 여기에 코스닥 기술성 평가에서 A등급 부여가 인색하다는 업계 불만이 겹칩니다.
IPO라는 통로 자체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IPO 쏠림이 커지는 동시에 그 통로가 규제로 좁아집니다.
돈은 이미 이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M&A·세컨더리 정책자금 출자는 전년 3,060억원에서 4,470억원으로 46% 늘었습니다. 중기부 모태펀드의 회수활성화 분야 출자는 3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네 배가 됐습니다.
IR 자료를 매각 자료로 바꾸는 여섯 줄
들고 있는 IR 덱을 그대로 매각 협상에 가져가면 상대가 웃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갈아끼워야 하는지 항목별로 적겠습니다.
| IR 자료 (투자자용) | 매각 자료 (인수자용) | |
|---|---|---|
| 1. 시장 | TAM·SAM·SOM, 시장이 몇 배로 큰다 | 우리 매출이 실제로 어디서 나오는가, 거래처별 비중 |
| 2. 매출 | 성장률과 다음 분기 전망 | 3개년 실적과 반복되는 비중, 이탈률 |
| 3. 비용 | 왜 지금 적자인지, 언제 흑자 전환하는지 | 조정 EBITDA와 정상화 항목의 증빙 |
| 4. 팀 | 창업자 스토리, 핵심 인재 | 대표가 빠졌을 때 누가 그 일을 하는가 |
| 5. 제품 | 로드맵, 앞으로 나올 것 | 지금 파는 것, 그 단가가 유지되는 근거 |
| 6. 리스크 | 안 씁니다 | 먼저 씁니다. 소송·보증·우발채무를 우리가 먼저 꺼냅니다 |
여섯 번째가 제일 낯선 항목입니다. 투자 자리에서는 위험을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매각 자리에서는 반대입니다.
어차피 실사에서 다 나옵니다. 우리가 먼저 말한 위험은 협상 항목이 되고, 상대가 찾아낸 위험은 신뢰 문제가 됩니다. 금액이 같아도 결과가 다릅니다. 먼저 꺼내면 「이만큼은 값에서 빼시고 나머지는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로 갑니다. 들키면 「이것 말고 또 뭐가 있습니까」로 갑니다.
같은 지표를 반대로 읽습니다
숫자를 안 바꿔도 해석이 뒤집히는 항목들이 있습니다. 협상 전에 이것만 알고 가도 대화가 달라집니다.
성장률. 투자자는 높을수록 좋아합니다. 인수자는 그 성장에 얼마가 들어갔는지를 먼저 봅니다. 마케팅비를 두 배 써서 만든 성장이면 인수 후에도 그 돈을 계속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객 수. 투자자는 늘어나는 곡선을 봅니다. 인수자는 상위 몇 곳이 매출의 몇 %인지를 봅니다. 고객이 1,000곳이어도 상위 세 곳이 60%면 고객은 사실상 세 곳입니다.
대표의 존재감. 투자자에게는 강점입니다. 창업자가 직접 뛰는 회사를 좋아합니다. 인수자에게는 위험입니다. 그 사람이 나가면 회사가 반쯤 빠집니다.
적자. 투자자는 「성장에 재투자 중」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인수자는 인수 후에 자기가 메워야 할 돈으로 읽습니다.
미래 계획. 투자자는 이걸 삽니다. 인수자는 대개 자기 계획이 따로 있습니다. 파는 쪽이 로드맵을 길게 설명할수록 「이 사람은 아직 팔 준비가 안 됐다」로 읽힙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투자자는 앞으로 생길 것에 값을 매기고, 인수자는 지금 있는 것에 값을 매깁니다. 같은 회사를 놓고 한쪽은 가능성을 사고 한쪽은 현금흐름을 삽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두 국면을 번갈아 오가며 얻은 결론은 간단합니다.
투자유치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파는 자리입니다. 엑시트는 지나온 시간을 정산받는 자리입니다. 어느 쪽이 더 어렵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준비하는 방식만큼은 분명히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투자유치 쪽 준비는 투자유치 연재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투자유치를 앞둔 대표라면 지금 당장 매각 실사 수준의 서류를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계약서 원본을 흘려놓지 마십시오. 인건비와 세금 신고를 실제 근무 형태와 일치시켜 두십시오. 이 정도 기본기는 미리 갖추는 편이 낫습니다.
이 기본기를 갖춘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를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준비된 회사는 서너 달이면 실사가 끝납니다. 그렇지 않은 회사는 반년 넘게 늘어집니다. 그 사이 매수자의 인수 의지마저 식어버리는 경우를 봤습니다.
투자유치 단계에서 미리 이 기본기를 갖춰두면 어느 경로를 택하든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던져보는 질문 하나
다른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누가 우리 회사 계좌를 열어보자고 한다면 어떨까요. 며칠 안에 지난 3년 치를 설명할 수 있으신가요.」
대부분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립니다. 투자유치를 이미 몇 차례 겪어본 대표라도 이 질문 앞에서는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음 편 — 5화 · 내 회사는 팔릴까 — 매수자가 첫 30분에 보는 것
오늘 할 것
지금 누가 우리 회사 계좌를 열어보자고 한다고 해 봅시다. 며칠 안에 지난 3년 치를 설명할 수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출처
- 삼정KPMG 2026-09-08 발간 자료 (회수 유형별 비중)
- 금융위원회·한국거래소 발표자료 2026-07-06 (중복상장 원칙금지)
- 개정 자본시장법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2026-11-13 시행
- 중소벤처기업부·한국성장금융 정책자금 출자 계획 자료, 2026년 기준
- 텀시트·SPA 분량 비교 및 실사 항목 비교는 저자가 2019년·2025년 두 차례 실사에 직접 대응한 경험 정리 (2026.08)
진술 및 보장 조항을 판례가 어떻게 보는지는 『M&A와 엑시트의 기술』 19장, 실사 요청 리스트 전체는 31장에 있습니다.
이 글은 법률 자문이나 세무 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거래는 변호사와 세무사의 검토를 거치십시오.
자주 묻는 질문
투자유치와 매각은 무엇이 다릅니까?
투자유치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믿게 만드는 일이고, 매각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증명하는 일입니다. 같은 자료를 정반대로 읽습니다.
IR 자료를 매각에 그대로 쓰면 안 됩니까?
시장 규모·성장률·로드맵 중심의 IR 자료는 인수자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반복 매출 비중, 조정 EBITDA와 증빙, 대표 부재 시 대체 인력으로 바꿔야 합니다.
위험은 언제 밝혀야 합니까?
먼저 밝히는 편이 낫습니다. 우리가 먼저 말한 위험은 협상 항목이 되고, 상대가 찾아낸 위험은 신뢰 문제가 됩니다.
지분 구조 자가점검으로 바로 해 보십시오
실사에서 반드시 확인하는 항목들입니다. 투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여덟 칸을 채워 두십시오.
받아 두실 것도 있습니다 — 투자유치 · IR 자료
이 글 인용하기
보고서나 발표자료에 옮겨 쓰셔도 됩니다. 출처만 같이 적어 주십시오.
정윤섭. 「투자를 받는 일과 회사를 파는 일은 다른 게임입니다」. younsubjung.com, 2026.09.20. https://younsubjung.com/blog/investment-vs-exit
<a href="https://younsubjung.com/blog/investment-vs-exit">정윤섭, 「투자를 받는 일과 회사를 파는 일은 다른 게임입니다」</a> (younsubjung.com,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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