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섭 · Younsub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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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협업, 미팅은 잡히는데 그다음이 없을 때
칼럼

대기업 협업, 미팅은 잡히는데 그다음이 없을 때

미팅은 잡히는데 그다음이 없습니다. 담당자가 바뀌고, 검토가 길어지고, 예산이 넘어갑니다. 붙는 쪽에서 준비할 것을 적었습니다.

2026.09.09· ·읽는 데 8분· younsubjung.com/blog/oi-strategy-startup

스타트업 대표들이 대기업 협업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자료를 다듬는 겁니다. 장표를 고치고 시연 영상을 만듭니다.

그런데 제가 옆에서 본 바로는, 붙는 건과 안 붙는 건의 차이가 자료에서 갈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갈리는 지점은 상대편 조직 안에서 이 건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입니다.

그걸 모르면 준비를 아무리 해도 헛돕니다.

첫 미팅에서 반드시 물어볼 한 가지

미팅이 끝날 때쯤 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 건 결재는 어느 선까지 올라갑니까.」

무례한 질문이 아닙니다. 담당자도 대개 솔직하게 답합니다. 그리고 이 답 하나로 앞으로 몇 달의 일정이 정해집니다.

안 묻고 진행하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대표가 담당자에게 「그럼 이렇게 가시죠」라고 던집니다. 담당자 쪽에서 답이 안 나옵니다. 그 자리에서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까요. 대표는 왜 반응이 없는지 몰라 답답해집니다.

담당자가 소극적인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답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아닐 뿐입니다.

Figure 1
같은 상황을 양쪽이 다르게 읽습니다
스타트업 쪽
주 단위로 삽니다
런웨이가 6개월이면 한 달이 6분의 1입니다. 2주가 지나면 이미 다음 카드를 찾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대기업 쪽
분기와 연 단위로 삽니다
예산은 한 해 단위로 짜이고 실적은 석 달마다 봅니다. 2주는 팀 회의에 한 번 올라갔을까 말까 한 시점입니다.
같은 날짜인데 한쪽은 이미 접었고 다른 쪽은 이제 막 올리는 중입니다.

답이 없는 세 가지 이유

연락이 끊겼을 때 대개 셋 중 하나입니다.

하나, 아직 답이 없습니다. 올려두긴 했는데 결론이 안 났습니다. 「검토 중」이 가장 정확한 말인데, 이 표현이 받는 쪽에는 회피처럼 들립니다.

둘, 안 될 것 같은데 그 말을 꺼내기 어렵습니다. 내부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나왔지만 딱 잘라 통보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나중에 다시 볼 사이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침묵을 택합니다.

셋, 잊고 있습니다. 담당자에게는 원래 업무가 있고 그 사이에 급한 일이 생깁니다. 이 건은 뒤로 밀립니다.

셋 다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대응이 있습니다. 다만 세 경우의 대응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중간 확인을 짧게라도 넣어두는 게 좋습니다. 2주에 한 번, 진행을 묻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될 자료를 보내는 형태로요.

대기업 안에서 이 건이 지나가는 길

스타트업 대표가 만나는 사람은 담당자 한 명입니다. 그런데 그 건은 조직 안에서 여러 사람을 지나갑니다.

Figure 2
한 건이 통과하려면 지나가는 자리
01
담당자
우리가 만나는 사람입니다. 대개 결정권은 없고, 위에 올릴 자료를 만드는 역할입니다.
02
현업 부서
실제로 이 기술을 쓸 조직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면 되는데」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멈춥니다.
03
결재선
금액에 따라 팀장인지 임원인지가 갈립니다. 금액을 낮추면 통과 속도가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04
법무·구매
계약 단계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여기서 몇 주가 더 걸린다는 걸 일정에 넣어두셔야 합니다.
담당자를 설득하는 일이 아닙니다. 담당자가 02와 03을 통과하도록 거드는 일입니다.

이 그림이 왜 중요하냐면, 스타트업이 준비해야 할 자료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담당자에게 필요한 건 우리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위에 올릴 때 쓸 근거입니다. 얼마를 아끼는지, 얼마나 빨라지는지, 다른 데서 이미 검증됐는지. 숫자로 대답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 담당자가 우리 편이 됩니다.

사람이 바뀌면 진행이 원점입니다

몇 달을 진행한 건이 인사이동 한 번에 사라지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후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그 건은 앞사람이 하던 일이고, 성과가 나도 앞사람 실적처럼 보입니다. 이어받을 동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수인계 문서에는 대개 진행 상황만 적혀 있어서, 왜 이걸 시작했는지가 안 남아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대응이 셋 있습니다.

처음부터 두 명 이상이 알게 만드십시오. 미팅에 담당자만 오면 다음에는 현업 한 명을 같이 불러 달라고 요청하는 식입니다.

주고받은 내용을 정리해서 메일로 남기십시오. 회의가 끝나고 그날 안에 보내면 됩니다. 후임자가 왔을 때 그 메일 묶음이 유일한 기록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계약으로 넘어가는 시점을 앞당기십시오. 금액이 작아도 계약서가 있는 건은 인사이동을 넘어갑니다. 구두 합의는 못 넘어갑니다.

양해각서를 레퍼런스로 쓸 때

이건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야 하는 대목입니다.

투자 자료에 대기업 이름을 넣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게 효과가 있기도 하고요. 문제는 표현의 수위입니다.

양해각서는 구속력이 없는 문서입니다.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의사 표시에 가깝습니다. 이걸 「협업 중」이나 「공급 계약 체결」처럼 쓰면 실사에서 걸립니다.

심사역은 계약 형태를 물어봅니다. 그 자리에서 양해각서라는 답이 나오면, 문제가 되는 건 그 항목 하나가 아닙니다. 자료 전체의 신뢰가 흔들립니다. 다른 숫자들도 다시 보게 되니까요.

표현 기준
양해각서 단계는 「협업 논의 진행 중」, 비밀유지 계약과 자료 교환까지 갔으면 「기술 검토 단계」, 검증 계약을 썼으면 「실증 진행 중」, 검증이 끝나고 공급이 시작됐으면 「공급 개시」로 적으시면 됩니다. 사실대로 적어도 충분히 좋은 신호입니다.

비밀유지 계약에서 볼 두 조항

스타트업이 계약서를 받으면 기간과 범위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위험이 숨는 쪽은 따로 있습니다.

잔류정보 조항입니다. 상대편 직원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는 비밀유지 대상에서 빼겠다는 취지의 조항입니다. 넓게 잡히면 문서로 준 것만 보호되고 미팅에서 설명한 내용은 남지 않습니다.

독립 개발 조항입니다. 우리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는 조항입니다. 필요한 조항이긴 한데, 범위가 넓으면 실질적인 보호가 얇아집니다.

두 조항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어떤 자료를 언제 넘길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습니다. 핵심 자료는 검증 계약을 쓴 다음에 넘기는 순서로 잡으시면 됩니다.

검증 단계에서 확인할 것

실증까지 갔는데 양산으로 안 넘어가는 경우가 가장 흔한 실패 유형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개 시작할 때 안 정한 것들입니다.

Figure 3
검증 계약을 쓰기 전에 확정할 것
01
무엇을 성공이라고 부를 것인가
숫자로 적어야 합니다. 「잘 되면」으로 두면 끝나고 나서 판단이 갈립니다.
02
성공하면 다음이 무엇인가
기준을 넘겼을 때 어떤 절차로 넘어가는지가 계약에 없으면, 그때부터 다시 처음부터 설득합니다.
03
결과물의 권리는 누구 것인가
우리가 원래 갖고 있던 기술과 이번에 새로 만든 것을 나눠서 적어야 합니다.
02가 비어 있는 검증은 성공해도 거기서 멈춥니다.

비용을 우리가 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자체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비용을 대는 대신 위 세 가지가 계약에 들어가야 합니다. 기준도 다음 단계도 없이 비용만 지는 구조라면, 그건 검증이 아닙니다. 무상 개발입니다.

우리 편에 설 사람이 그 회사 안에 있습니까

지금 진행 중인 대기업 건이 있다면 세 가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상대편에서 이 건을 아는 사람이 몇 명입니까. 한 명이면 그 사람이 나가는 순간 끝납니다.

지금까지 오간 내용이 문서로 남아 있습니까. 메일이라도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조건이 정해져 있습니까. 「검토해 보고 연락드리겠다」는 조건이 아닙니다.

세 칸이 다 비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건 협업이 아니고 대화입니다.

참고
국내 조사 대상 기업 중 전략적 제휴를 맺은 곳은 7.1퍼센트이고, 그중 공동투자까지 간 경우는 20.7퍼센트입니다(국가데이터처 2024년 기업활동조사 잠정). 지분으로 묶이지 않은 협업이 왜 잘 끊기는지는 오픈이노베이션 트렌드 편에서 다뤘습니다.

다음 편 — 중견기업 오픈이노베이션 준비, 대기업 방식을 그대로 쓰면 안 되는 이유

FAQ

자주 묻는 질문

대기업 담당자에게 결재 권한을 물어봐도 됩니까?

물어보셔야 합니다. 「이 건 결재는 어느 선까지 올라갑니까」라고 물으면 무례하지 않습니다. 답을 들어야 일정을 짤 수 있고, 상대도 대개 솔직하게 알려줍니다.

대기업에서 2주째 연락이 없으면 거절로 봐야 합니까?

아닙니다. 대기업은 분기와 연 단위로 움직여서 2주는 검토가 막 시작된 시점일 수 있습니다. 답이 없는 이유는 대개 셋입니다. 아직 결론이 안 났거나, 부정적인데 말하기 어렵거나, 다른 급한 일에 밀렸거나.

PoC 비용을 스타트업이 부담해도 됩니까?

부담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조건을 봐야 합니다. 비용을 대는 대신 성공 기준과 다음 단계 조건이 계약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기준도 다음 단계도 없이 비용만 지는 구조라면 검증이 아니라 무상 개발이 됩니다.

양해각서를 투자 유치 자료에 써도 됩니까?

사실대로 쓰면 됩니다. 양해각서는 구속력이 없는 문서라 「협업 논의 중」 이상으로 표현하면 나중에 실사에서 문제가 됩니다. 심사역은 대개 계약 형태를 물어보고, 과장이 드러나면 그 건 하나가 아니라 자료 전체의 신뢰가 흔들립니다.

담당자가 바뀌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행 상황만 정리한 문서로는 부족합니다. 왜 이 협업을 시작했는지, 어디서 막혔는지, 다음에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까지 남겨야 후임자가 이어받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상대편에서 두 명 이상이 이 건을 알게 만들어 두십시오.

NDA를 먼저 요구해도 됩니까?

됩니다. 다만 무엇을 보호할 것인지가 분명할 때 요구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잔류정보 조항과 독립 개발 조항을 봅니다. 이 두 조항이 넓게 잡혀 있으면 비밀유지 계약을 쓰고도 실질적인 보호가 남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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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스타트업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오픈이노베이션#대기업 협업#PoC#NDA#M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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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나 발표자료에 옮겨 쓰셔도 됩니다. 출처만 같이 적어 주십시오.

글로 적을 때 정윤섭. 「대기업 협업, 미팅은 잡히는데 그다음이 없을 때」. younsubjung.com, 2026.09.09. https://younsubjung.com/blog/oi-strategy-startup
블로그에 붙일 때 <a href="https://younsubjung.com/blog/oi-strategy-startup">정윤섭, 「대기업 협업, 미팅은 잡히는데 그다음이 없을 때」</a> (younsubjung.com,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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